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산과 ‘평양만세사건’의 전개 -숭실전문학교 학생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The Spread of the Gwangju Student Movement to Pyongyang and the Development of the ‘Pyongyang Manse Incident’ —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Soongsil School Students —

초록

이 논문은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항일시위로 1930년 1월 21일~23 일까지 평양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대해 숭실학교, 특히 숭실전문학교학생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 본 것이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평양만세사건은 1929년 12월 중순 어느 새벽 숭실전문학교 기숙사를 찾아온 고당 조만식의 권고에 의해 본격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은 1월 중순 3학기가 개학하자 숭실전문, 숭실중학을중심으로 한 평양시내 7개교의 학생 대표들이 모여 연합시위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1일을 기해 본격적인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가 발생하자 『중외일보』에서는 평양지역 시위에 대해 광주학생운동이 지속된 학생들의 제3차 시위라고 강조하였으며, 숭실학교 학생들은 시위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격문을 작성ㆍ배포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만세사건과 관련해 숭실전문에서 67명, 숭실중학에서 40명이 검거되어 검거된 학생 107명 가운데 앞도적 다수를 점하였으며, 체조를 담당하던 孫興球선생 이외에 姜泰民, 金永石, 琴聲出, 李權燦, 李敬出 등이 시위를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10일~29일의 구류 처분을 당했으며, 학교에서도 별도의 징계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능상, 김양선을 비롯해 김형두, 윤제만, 송희선 등은 격문과 태극기 제작및 배포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들의 격문작성과 배포는 평양학생만세운동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이 사건은 일제식민지 하에서 20년간의 식민지교육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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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산과 ‘평양만세사건’의 전개 -숭실전문학교 학생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제목 (타언어)
The Spread of the Gwangju Student Movement to Pyongyang and the Development of the ‘Pyongyang Manse Incident’ —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Soongsil School Students —
저자
황민호
DOI
10.19162/KNM.122.2025.3.02
발행일
2025-03
저널명
한국민족운동사연구
122
페이지
49 ~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