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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의 [시경] 수용 양상-史詩적 본질과 天命담론-
초록
<용비어천가>에 미친 시경 의 영향 가운데 史詩的 측면과 天命담론을 분석했다. 시경 이 춘추 이전에 만들어진 고대의 문화적 산물이지만, 三禮와 함께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중세적 보편성을 담보하는 典範的 지위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중세 왕조들의 예악정치에서 제도적 표준으로 오랜 세월 군림할 수 있었다. 三代 예악문화의 결정판인 周代의 악장(혹은 악장집)으로 출발한 점에서도 후대의 왕조들은 시경 에 대하여 불변의 기대지평을 갖게 되었다. 그런 전제를 바탕으로 조선조의 대표 악장 <용비어천가>를 만들면서 시경 을 배우거나 참조하는 것은 당연했다. <용비어천가> 제작자들은 후직~무왕에 이르는 주나라 창업 선조들과 종묘사직을 든든하게 보위한 주공의 사적, 그리고 이들에게 내린 천명을 그려낸 일부 시경 시들, 특히 <면>․<생민>․<황의> 등을 주목했다. 역사를 서술한 노래들에 새 왕조 창업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주제적 관념인 천명을 담은 것이 이들 시의 공통점이었다. 즉 역사와 천명은 왕조의 창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경 의 해당 시들이 갖추었어야 할 두 가지 필수 요소들이었고, 새로 건국한 조선조에서도 그것들은 절실했다. 목조~태종까지 6조의 사적을 노래함으로써 <용비어천가>는 시경 과 같은 史詩가 될 수 있었고, 천명을 도입함으로써 창업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거기에 ‘왕조영속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대 왕들에게 ‘敬天勤民’을 강조함으로써 시경 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상나라에 내려졌던 천명이 주나라로 옮겨왔듯이, <용비어천가> 제작자들은 고려에 내려졌던 천명이 조선조로 옮겨온 것을 왕조 창업의 명분으로 삼았다. 따라서 천명은 도덕적 당위를 내포하는 개념이고, 조선의 건국이 도덕적 당위였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 <용비어천가> 제작자들의 사명의식이었다. 부도덕한 고려를 방벌하고 천의 明命인 이성으로 복귀하는 것이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하는 명분이었다. 그 명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중세 왕조 조선의 지배층은 시경 의 역사서술법과 천명담론을 차용하여 <용비어천가>를 제작했던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용비어천가>의 [시경] 수용 양상-史詩적 본질과 天命담론-
- 제목 (타언어)
- Acceptance Aspects of Shijing (詩經) in Yongbieocheonga (龍飛御天歌)
- 저자
- 조규익
- 발행일
- 2018-10
- 저널명
- 우리문학연구
- 호
- 60
- 페이지
- 157 ~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