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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의 ‘산업평화’ 수용과 국제적 관계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초록
본고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인천산선을 중심으로 도시산업선교회의국제적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60 년대 인천산선의 국제적 관계는 미국연합감리회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것은 조지 오글의 파견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연합감리회에서는 1964 년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아시아국 일부의 산업선교단체와 국제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인천산선에서 산업선교단체를 방문하고 관련자들과 교류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아시아연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인천산선의 방향성을 결정한 인물은 조지 오글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교육받은 노사관계는 ‘산업평화’의 구현이었다. ‘산업평화’는 미국 최대의 노동연합조직인 AFL-CIO가 지향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지향하는 노동조합운동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사관계를 중요시한‘산업평화’의 조성이었다. 이러한 방향성이 조지 오글에 의해 도입되었다. 그리하여 인천산선의 대표적인 평신도 조직인 느혜미아 모임과 카플링 모임의 목적이 ‘산업평화’ 조성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EACC에서 산업전도를 산업선교로 명칭을 변경하자 인천산선도 ‘산업전도’에서 ‘산업선교’로 변경하고 노사관계에 보다 더 중점을 둔 활동으로 전환하였다. 1970년 이후에는 한국 실무자들이필리핀과 미국에서 노사관계 관련 교육을 받고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산업평화’ 구현은 더욱 확산되었고 국제적 관계도 확대되었다. 실무자들의 이와 같은 훈련은 인천산선이 ‘산업평화’ 구현을 확대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부터 기독교 노동자 조직보다는 노사문제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하였다. 물론 노동자교회, 산우회, 공장목회위원회등의 조직을 통하여 기독교적 정체성은 유지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위한 미국연합감리회 선교부의 재정적인 지원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거의 70-80퍼센트에 이르렀다. 결국 인천산선이 지향한 것은 미국 노동조합이 제3세계에 확산시키고자 했던 ‘산업평화’의 구현과 확산이었으며, 이것은 냉전시기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천산선의 실무자들은‘산업평화’ 구현의 도입자이자 생산자였다.
키워드
- 제목
- 1960-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의 ‘산업평화’ 수용과 국제적 관계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The Acceptance of ‘Industrial Peace’ by the Urban Industrial Mission and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1960s to 1970s : Centered on Inchun Mission to Labor and Industry
- 저자
- 윤정란
- 발행일
- 2024-09
- 저널명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호
- 120
- 페이지
- 351 ~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