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오대산사고 사각 장서(史閣藏書)의 구성과 특징

The Composi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Collection of books of the Pavilion of historical records at the Odaesan Archive in the Late Joseon Period

초록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총 796책이었고, 보관에 사용된 실록궤는 59개였다. 이 중 임진왜란 이후 복간된 태조∼명종의 13대 실록은 총 260책이며 8개의 실록궤에 보관되었다. 이는태백산사고나 적상산사고에서 태조∼명종 대 실록 봉안에 13개의 궤가 사용된 것과 차이를 보이는데, 아마도 오대산사고본이 정본이 아니라 교정본이라는 점에 기인한 차이로 추정된다. 한편, 선조실록은 오대산사고본이 89책, 다른 사고본은 116책으로 책 수 차이가있다. 이는 제책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내용의 차이는 없다. 또 오대산사고본 선조실록에는 인출 후에 교정한 흔적들이 있는데, 이는 오대산사고본 선조실록이 정본이지만 처음부터 최종 교정을 염두에 두고 인출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외사고에는 실록 외에 일반도서들도 보관되었다. 17세기 초에 작성된 오대산사고 실록형지안(實錄形止案)에는 일반도서의 서명과 책 수가 궤 구분 없이 나열되어 있다. 그러다가 1641년 형지안부터 일반도서 목록에 <서책질(書冊秩)>이라는 제목이 붙었고, 각 궤에 보관된 서적을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또 1704년에는 당시까지 사각에 분상된일반도서를 분야별로 분류·정리하고 보관하는 궤를 다시 편제하는 개편이 이루어졌다. 오대산사고 사각의 일반도서는 상고(上庫)와 하고(下庫)로 나뉘어 보관되었다. 이와 같은 공간 구분에는 18세기부터 본격화된 어제(御製)·어필(御筆)·지장(誌狀)·보감(寶鑑) 등의 왕실 자료 봉안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8세기에 작성된 실록형지안에는이 같은 공간 분리가 반영되지 않았고, <서책질>에 상고 도서와 하고 도서들이 분상 순서에 따라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이 문제는 1803년 실록형지안에서 처음으로 상고 도서 목록을 별도 정리함에 따라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 오대산사고 사각의 장서 내역을 보면, 영조 대에 어제류 봉안이 크게 늘어났음을 알 수있다. 특히 1740년대 이후로 영조 본인의 어제 봉안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영조가 사고를 ‘어제 봉안처’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영조의 사고 인식은 개인 문집의 사고 봉안을 억제하는 조치로 나타났다. 반면, 정조는 개인 문집의 사고 보관을사실상 묵인했고, 재위 기간 중 사고 운영에도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양상은 정조가규장각을 설치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서적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약화됐던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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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 후기 오대산사고 사각 장서(史閣藏書)의 구성과 특징
제목 (타언어)
The Composi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Collection of books of the Pavilion of historical records at the Odaesan Archive in the Late Joseon Period
저자
강문식
DOI
10.16942/ssh.2025.54.06.03
발행일
2025-06
저널명
숭실사학
54
페이지
57 ~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