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을 통해 본 김좌진의 항일독립운동과 그 기억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of Kim Jwa-jin as seen through the domestic media and its remembrance

초록

본 논문에서는 일제시기와 해방 직후 국내언론에 나타난 김좌진의 항일독립운동과 추모에 관련된 기사들을 정리해 분석해 보았으며, 특히 그가 사망한 이후 나타는 추모 기사의내용을 분석해 그의 독립운동이 갖고 있던 대중적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는 김좌진 개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청산리전투에 대한 역사적 실체에 접근하는 것에 있어서도의미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좌진의 순국을 전후한 국내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보면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중외일보는 한결같이 그를 항일무장투쟁의 탁월한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청산리전투에서의 성과를 은연중에 높이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조선일보 의 김좌진에 대한 추모 기사는 당시가 시기적으로 일제 치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다의미있는 역사적 사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다른 신문들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미있는 분석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겠다. 이밖에 언론에 보이는 김좌진 사후 국내에서의 김두한을 염려하는 기사 등도 그의 순국을 안타까워하는던 국내 민중들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김좌진에 대한 기억과 추모가 청산리전투와 함께 되살아났으며, 이와 관련해서는 아들 김두한과 이범석 등과의 관계가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좌진에 대한 17주기 추도식이 김구와 조소앙 등 각계의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서울국제국장에서 거행되었으며, 추모비가 대한청년단 홍성군단부 주체로 고향인 홍성의 남산공원에 건립되었다. 일대기에 대한 영화제작이 논의 되었으며, ‘황야’라는 제목으로 한 연극공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김좌진의 어머니 한산 이씨의 부고와 관련된 기사 및 이범석의 회고에 나타난 기억은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김좌진이 존경받는 독립운동의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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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내 언론을 통해 본 김좌진의 항일독립운동과 그 기억
제목 (타언어)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of Kim Jwa-jin as seen through the domestic media and its remembrance
저자
황민호
DOI
10.16942/ssh.2024.52.6.05
발행일
2024-06
저널명
숭실사학
52
페이지
337 ~ 362